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의 생일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 설레는 날이 많이 있었다. 주로 선물을 바라는 마음에서가 가장 컸고, 꼭 선물을 받지 않는 날이라도 이를테면 운동회 전날이나 소풍 전날은 친구들과 즐겁게 지낼 생각에 마음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에서 들을 카세트 테이프를 챙기고, 미니오락기에 건전지도 새로 갈아끼우며 한껏 들떠있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아침에 무스를 발랐다가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샴푸를 몇번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 수차례의 시도 끝에도 결국 꼭 마음에 들지 않은 머리로 학교에 갔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특별한 날들이 조금씩 특별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좋아하던 것도 오래 사용하게 되면 싫증이 나는 것과 ..
2003년, 데이비드 베컴을 무척이나 사모하던 학생이었던 나는 축구게임을 할 때면 항상 그가 속한 팀을 골라 플레이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통에 그의 사진을 붙이고, 교과서 겉표지나 책상 등에 그의 이름을 적을 정도로 그를 좋아했다. 친구들은 나를 베컴교의 교주, '베컴교주'라 불렀다. 그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는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베컴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잘생긴 외모와 정확한 킥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플레이는 매우 귀족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운동장에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열심히 공을 차던 아이였기에 축구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입학시켜 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좌절..
근 한달여 전부터 세상은 온통 최순실로 떠들석하다.이 사건을 까발린 JTBC 뉴스룸은 공중파 3사의 뉴스를 합친것보다도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JTBC가 비로소 미디어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JTBC 뉴스룸의 특이점은 뉴스가 끝날 때 음악을 틀어준다는 데에 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음악 애호가 입장에서 너무나 멋진 일이다. JTBC 뉴스룸 제작진들의 수준을 참으로 높게 사고 싶다. 역시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방송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이다. 멋진 예술적 취향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해도 멋지게 해낸다. 이건 정말이다.오늘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캐롤킹의 가 네이버 실검에 오른 현상을 보면서 JTBC 뉴스가 수 많은 음악프로그램보다 대한민국의 음악발전에 기여하는..
하릴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무척 익숙해졌다고 해도, 오늘 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좁은 내 방이 더욱 좁게 느껴지고 고립되는 느낌이 든다. 이런 날은 잠도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외동이라는 것은 이럴 때 가장 힘들다. R.E.M의 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더욱 우울해진다. 슬플 때는 슬픈음악을 듣지 말아야 하는 걸까. 예전같으면 술을 한잔 했겠지만 지금은 그냥 맨정신으로 버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술을 마신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사무치게 외로워질 뿐이고 더욱 슬픈음악을 찾게 된다. 어쩌면 인간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더욱 그 기분상태를 고조시키려고 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술을 마시고 잊는다고들 하지만, 사실 술을 마시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상태가 더 고조되지 않..
학원에 가는 길 모퉁이에 붕어빵 가게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갈 때마다 붕어빵 가게를 지나가는데 항상 아주머니가 붕어빵을 팔고 계신다. 요새는 날이 따뜻해졌지만 겨울에는 옷을 몇겹씩 껴입으시고 계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왠지 기분이 울적해진다. 그것은 아마 내가 속으로 그 아주머니를 동정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럴때면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한다. 내가 뭔데 남의 삶을 판단하는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사지도 않을거면서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힐끗 보면서 지나가곤 하는데, 밤에 집에 갈 즈음에는 이미 문을 닫고 안 계신다. 오늘은 집에 갈 때 아주머니가 장사를 정리하고 계셨다. 뭔가 짐 같은 것들을 오토바이의 짐 칸에 옮기..
갑자기 기분 센치해지는 그런 날. 누구나 그런 날이 있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는 보통 음악을 듣다가 그런 감정 상태에 놓이기 마련인데 음악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다 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음악을 즐겨듣던 시절이 떠오르고, 그러다 보면 그 시절 좋아했던 여자의 생각이라던지 -누구나 이 생각이 가장 많겠지-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또 그러다 보면 생각들은 가지를 치고 또 쳐서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곳까지 나를 데려가곤 한다. 이런 일들은 보통 몇 달에 한번정도 일어나는 데 요새 봄이라 그런지 이런 일들이 잦다. 나이 서른에 몸은 성찮고, 덕분에 취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더욱 감상에 빠지게 되는 날이 많다. 나를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은..
최근에 최택이다 뭐다 바둑에 관심이 은근히 높아지고 있던 시점에서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바둑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지만 혹여 이세돌 9단이 질 경우에는 바둑계에서 후폭풍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을 했었는데 우려했던 일이 오늘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다. 이세돌이 초반 포석에서 평소에는 두지도 않던 변칙수를 둘 때 너무 얕보는거 아닌가 싶어서 찝찝하고 불안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초반부터 워낙 안 좋은 형세로 가길래 알파고가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중반까지 접전으로 이끌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우하귀에서 패착이 역시 이세돌이 지는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 네 번의 대국이 남았는데 오늘 바둑을 보았을 때 이세돌 9단이 평소대로 두면서 실수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이길 것이라 생각한..
자는 척 하는 내 오른쪽 뺨에 알코올 향이 풍기는 차가운 입술 닿았을 때 25년 전 십정동의 추억과 삼촌 졸업하던 그 날 학사모를 쓴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초라해 보였던 날의 기억과 창재 삼촌 집에서 매주 같이 축구게임을 하던 그날들과 담배연기로 노랗게 변해버린 벽지의 그 방에서 프랑스 월드컵을 같이 보던 그날과 같이 공유하지 못한 삼촌만의 세월들 까지도 한꺼번에 나에게 와서 닿는 것 같았다. 삼촌이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삼촌은 나와 비슷한 점이 참 많아서 내가 잘 안다. 지금 사는 모습보다는 훨씬 더 인정받아 마땅할 사람이다. 단지 아직 세상과, 여자들과, 운과 모든 것들이 삼촌을 잘 몰라본 것 뿐이다. (2016년 2월 9일 글)
참 머리 복잡해지고 정리 안되더라. 내가 사장이었어도 나를 안 뽑겠다. 일단, 내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을 못했다. 그것은 내가 말을 제대로 못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서른이면 어느정도 한 분야에서 뭔가를 이루어야 (혹은 이루고 있어야) 될 나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일단 당장은 지금 나와 처지가 같은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이 떠오른다. 그도 동네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다가 마흔이 넘어서야 성공했다. 물론 창업은 삼십대 후반에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외에도 나이가 먹어서 성공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저커버그 처럼 젊어서 성공한 사람도 많다. 국내에 공연하러 온 클랩튼에게 무식한 기자 하나가 요새 당신보다 기타 잘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질문이랍시고 했다. 클랩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