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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거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혹여 먹는거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맥스 야스거(Max Yasgur)는 뉴욕의 베델평원에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다. 농장주가 도대체 뭔데 노래 제목에까지 이름이 사용된단 말인가. 1그것을 이해하려면 역사상 다시는 없을 음악 페스티벌인 우드스탁(Woodstock)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드스탁 포스터
소위 우드스탁이라고 하면 '음악과 평화의 3일'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1969년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진행 된 지상 최대의 다시 없을 음악 페스티벌이며 정식명칭은 Woodstock Music & Art Fair 이다. 무려 45만명이 운집했던 역사에 유래없는 페스티벌이었다. 45만명이라고 하면 감이 잘 안오시는 분들이 계실텐데 정상급 한류스타가 콘서트를 자주 여는 도쿄돔의 수용인원이 5만 5천명인데 그것의 8배쯤 되는 인원이다. 그래도 감이 잘 안오시는 분들을 위해 사진을 준비했다.
▲우드스탁 뮤직 페스티벌
이 페스티벌은 당시 한창 유행하던 반전(反戰), 평화, 자유와 같은 정신에 바탕을 둔 히피(Hippie)문화의 땅 위에 피어난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기타 위에 뭐가 앉아 있는지 보시라. 평화의 상징 닭둘기가 턱 하고 앉아 있다. 히피문화의 기저에는 특히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과 존 F.케네디(John F. Kennedy) 암살,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목사의 암살과 같은 사건들을 거치면서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만과 자연으로의 회귀, 평화를 주장하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피어난 문화이다. 2
처음에 이 공연을 기획했던 기획자들은 이렇게 많은 인원이 운집할 줄은 몰랐었다. 많이 와 봐야 몇 만명 정도 운집할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5만명이건 50만명이건 무대를 세우고 공연을 할 땅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난관에 봉착한다. 페스티벌이 열릴 지역의 시민들이 반대를 하여 마땅한 땅을 허가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많은 인원이 똥 싸고 오줌 싸고 난리 브루스를 칠텐데 좋다고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와중에 맥스 야스거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맥스 야스거와 그의 농장 (1968)
야스거는 그의 농장을 페스티벌을 위해서 빌려주게 되는데 그의 허가 뒤에는 주민들의 수 많은 협박들이 빗발친다. 너 자꾸 그러면 손톱 위에 살을 뜯어 낸다느니, 택배 받으러 급하게 나가다가 문지방에 발톱 찧게 한다느니 수 많은 협박에 시달렸으며 그의 농장에서 나온 우유를 사지 말라는 불매운동도 벌어지게 되고 공연 후에는 소송에도 휘말리게 된다. 그러나 그런 협박들에도 결국 그는 농장을 빌려주게 되고 공연은 무사히 마무리된다. 공연 후에 마운틴(Mountain)이라는 밴드는 그들의 첫 앨범 Climbing! 에서 '야스거의 농장을 위해'라는 의미의 <For Yasgur's Farm>이라는 곡으로 그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다. 사실 이 곡은 그들이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던 곡으로서 원래 제목은 다른 제목이었는데 페스티벌이 끝나고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을 내면서 곡 제목을 바꿔서 발매한 것이다. 가사를 봐도 야스거나 우드스탁 페스티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가사이다. 단지 제목만 그렇게 바꾼 것이다. Climbing! 은 빌보드 앨범차트 17위에 오르며 흥행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이 앨범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곡은 <Mississippi Queen>인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For Yasgur's Farm>이 가장 좋다. 아마 그들도 그들의 앨범에서 가장 좋은 곡을 그에게 헌정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앨범 Climbing!
점점 낭만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야스거의 스토리를 되새기며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아보자며 깔끔하게 마무리 할 수도 있겠지만 다 써놓고 보니 우드스탁을 너무 아름답게만 묘사한 것 같은데 사실 길바닥에 오줌싸고 똥싸고 마약하고 아무나 잡고 섹스하고 그야말로 집단 광란의 3일이었다. 이 후에 1979년에 10주년, 1989년에 20주년, 1994년에 25주년, 1999년에 30주년 콘서트를 열었는데 1999년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퇴폐하여 더 이상 개최하지 않기로 하고 우드스탁은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좋은 정신과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약과 섹스의 온상이 되어버린 우드스탁은 안타깝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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