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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하릴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듯 나는 늘 지하철에 앉아서 맞은 편의 창을 바라본다.
별 생각이란 없다. 그저 본다.
사람들이 주욱 앉아있는 의자 바로 위의 큰 화면을 볼 때도 있고, 출입문에 작은 화면을 볼 때도 있다.
때때로 책을 읽기도 하지만 역시 난 영상에 익숙한 세대라 그런지 화면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지하철 창에서는 어느 때는 낮의 장면들이, 어느 때는 밤의 장면들이, 어느 때는 비가 오는 장면들이, 또 어느 때는 눈이 오는 장면들이 지나간다.
얼핏 보면 매번 같은 장면들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같은 장면은 한 번도 없다. 게다가 약 2분에 한번씩 인터미션도 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맞은 편의 관객들이 이미 많이 바뀌어 있기도 하다.
나와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장면을 보고 있는 관객들인데 그들 중 대다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잠을 자는 관객이다.
고작 천 몇백원짜리 영화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서서 보는 관객이 화면을 가려도 비키라는 말 한마디 없는 것이리라.
나는 지금 의정부행 일호선 전철에 앉아 자주 보던 장면들을 이름 모를 외국인의 옆에 앉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일본의 지하철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일본의 스크린-지하철 창-옆에 붙어 있던 푸른색 비키니의 사사키 노조미도 생각이 났다.
그때의 공기의 온도와 감촉과 느낌까지도. 기억은 나를 그때로 옮겨놓는 타임머신과 같다.
나는 때때로 지하철 창문에서 나오는 장면들을 보다가도 과거로 여행을 하고, 어떨 때는 음악을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도 과거의 기억으로 잠시 들어갔다 나온다.
(2015년 10월 22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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